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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2 Paris 플레이리스트

Author
chloebringsjoy
Date
2022-06-06 02:44
Views
540

의외로 파리 가면 듣겠다고 다짐했던 트랙들은 전혀 안 들었다. 도시가 풍요로워서 그랬는지, 음식과 사람들이 풍요로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, 의외로 약간의 기름기가 낀 노래들은 잘 안 듣게 되었던 것 같다. 아무래도 이번 짧은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피카소 뮤지엄에서 살짝 맛본 피카소 최후의 전시. 피카소는 '최악이다'라는 평을 들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는데, 나는 그것이 진정으로 거장의 면모가 아닐까, 생각했다. 그림과 떨어지면 죽을 것 같다는 욕망이 어쩔 수 없이 배어나오는, 그토록 무절제한 삶. 피카소라는 사람이 인간적으로 좋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. 사실 피카소 같은 사람은 (개인적으로 안다면)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부류긴 해..

눈 앞에 놓인 모든 것들을 모조리 그려내고야 말겠다는 탐욕적인 마음가짐이 부럽기도 했고 (딸의 그림들), 징그럽기도 했다 (여성의 그림들). 그러한 욕망이 예술로 용인받을 수 있는 것 역시 그가 누렸던 특권의 일부다. 하지만 최소한 그는 화폭 앞에 자신을 세워두었을 때 꽤나 솔직했던 것 같고,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.

근처에 펜할리곤스 매장이 있어 향수를 이것저것 시향해보다가 Lily 뭐시기로 시작하는 향을 맡았는데, 그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. 나 혼자 드넓은 정원 안에 외로이, 하지만 편안하게, 놓여있다는 기분이 들었다. 퐁뇌프 다리 근처와 마레 지구에 혼자 며칠 머물기로 한 건 좋은 결정이었어! 이제 다시 일해야지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