Miscellaneous (한 + EN)
엘리트에겐 냉소가 아닌 냉수가 필요하다
Author
chloebringsjoy
Date
2019-09-26 23:36
Views
407
(2019. 2. 13)
2019년 2월 13일 오전, 열람실에서의 발견 1.
“이 책에서 냉소를 발견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. 혹시 오해를 할까봐.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접속사죠. 이게 어떤 어려움이나 충분히 냉소할만한 상황이 있더라도, 그럼에도 불구하고, 로 이어질 수 있는 어떤 자세에 대해서… 그런 자세는 저 또한 닮고 싶었어요. 충분히 비관적인 이야기를 할 때조차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맥락이 남아있게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.”
(Taeyung Kang님의 페이스북)
2019년 2월 13일 오전, 열람실에서의 발견 2.
알량한 학생의 질문.
[저는 연휴 때 교수님께서 학부 수업 당시 추천해주신 <애덤 스미스 구하기>를 읽었습니다. 이 책은 현재 절판되어 중고 서점에 가야 살 수 있어요. “영혼을 가진 지성적 존재로 사람을 대하면 모든 것을 잃지는 않는다. 반대로 소 떼로 취급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. 언젠가 그 뿔로 당신을 들이받게 될 테니까.” 애덤 스미스가 볼테르의 말을 인용한 이 구절이 <애덤 스미스 구하기> 도입부에 인용되어 있는데요. 너무 어려운 말 같아요. 저는 가끔은, 정말 가끔은, 너무 말하기 힘든 상대와는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. 예를 들면, 오늘 미디어관 바로 앞 사거리에 붙어있던 “동성애가 풍기문란 조장한다, 차별금지법 반대한다” 라는 플랜카드나 오늘 안암역에서 한 할머니께서 나누어주신 “JTBC 뉴스 조작, 문재앙 처벌하라” 같은 팸플릿이 그렇죠. 하지만 그런 메시지를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절대 소 떼는 아닐 거에요.
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결국 ‘그런’ 사람들과 저 자신을 자꾸 분리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나, 하는 생각을 합니다. 글을 쓸 때 기름기를 빼라는 교수님의 조언이 떠오릅니다.]
그리고 따뜻한 교수님의 답변.
[그대의 메시지는 늘 내게 소소한 즐거움을 전해 주는구료. 요즘 positive analysis 를 하는 정치(경제)학자들은 “정치학자들이 안락의자에 앉아서 플라톤을 읽던 우아한 시절은 지나갔다” 고 말하곤 하지요. 다함께 grand politico-economic model의 해를 찾아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찾기를 계속할 수 밖에 없을 듯.]
역시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재미있다. 물론, 그것은 공부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.
2019년 2월 13일 오전, 열람실에서의 발견 1.
“이 책에서 냉소를 발견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. 혹시 오해를 할까봐.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접속사죠. 이게 어떤 어려움이나 충분히 냉소할만한 상황이 있더라도, 그럼에도 불구하고, 로 이어질 수 있는 어떤 자세에 대해서… 그런 자세는 저 또한 닮고 싶었어요. 충분히 비관적인 이야기를 할 때조차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맥락이 남아있게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.”
(Taeyung Kang님의 페이스북)
2019년 2월 13일 오전, 열람실에서의 발견 2.
알량한 학생의 질문.
[저는 연휴 때 교수님께서 학부 수업 당시 추천해주신 <애덤 스미스 구하기>를 읽었습니다. 이 책은 현재 절판되어 중고 서점에 가야 살 수 있어요. “영혼을 가진 지성적 존재로 사람을 대하면 모든 것을 잃지는 않는다. 반대로 소 떼로 취급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. 언젠가 그 뿔로 당신을 들이받게 될 테니까.” 애덤 스미스가 볼테르의 말을 인용한 이 구절이 <애덤 스미스 구하기> 도입부에 인용되어 있는데요. 너무 어려운 말 같아요. 저는 가끔은, 정말 가끔은, 너무 말하기 힘든 상대와는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. 예를 들면, 오늘 미디어관 바로 앞 사거리에 붙어있던 “동성애가 풍기문란 조장한다, 차별금지법 반대한다” 라는 플랜카드나 오늘 안암역에서 한 할머니께서 나누어주신 “JTBC 뉴스 조작, 문재앙 처벌하라” 같은 팸플릿이 그렇죠. 하지만 그런 메시지를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절대 소 떼는 아닐 거에요.
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결국 ‘그런’ 사람들과 저 자신을 자꾸 분리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나, 하는 생각을 합니다. 글을 쓸 때 기름기를 빼라는 교수님의 조언이 떠오릅니다.]
그리고 따뜻한 교수님의 답변.
[그대의 메시지는 늘 내게 소소한 즐거움을 전해 주는구료. 요즘 positive analysis 를 하는 정치(경제)학자들은 “정치학자들이 안락의자에 앉아서 플라톤을 읽던 우아한 시절은 지나갔다” 고 말하곤 하지요. 다함께 grand politico-economic model의 해를 찾아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찾기를 계속할 수 밖에 없을 듯.]
역시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재미있다. 물론, 그것은 공부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.